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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宮]/경복궁

경회루, 수정전

국보 제 244호 경회루

조선 초기 경복궁을 창건할 당시에는 규모가 작은 누각이었으나 1412년(태종 12)에 연못을 확장하고 
큰 규모로 중건하였으나 임진왜란으로 불타 버려 1867년(고종 4)에 재건하였다. 
재건 전 1473년(성종 4)·1474∼1475년·1506년(연산군 12)에 수리공사가 있었다.

지금은 서쪽과 남쪽 담이 헐려(북쪽과 동쪽은 근래에 복원) 경회루를 잘 볼 수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높은 담으로 안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실제로 동쪽에 서면 담이 높아 경회루 지붕밖에 보이지 않는다. 
외국 사신이 왔을 때나 국가의 큰 행사시 연회를 베푸는 장소로 초청된 상위층만 드나들 수 있었던 곳이다.

누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가장 큰데 특이한 점은 경회루로 들어가는 동쪽 문이다. 
세군데에 문이 있는데 통상 가운데를 왕이 다니는 문으로 만들었던 것과 달리 
왕의 출입문이 가장 남쪽(가운데 기준 왼쪽) 문이다. 

그 이유는 왕의 주거 공간인 강녕전의 서쪽문과 가깝기때문인데 동선을 고려한 것이라 한다. 
[위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장 왼쪽 문이 제일 크다.]

경회루 건물은 건축학적 특징이 아주 많은데, 특징만으로도 논문이 나올 정도로 양이 많아 여기에 적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경회루에는 구종직이라는 사람이 얽힌 재미난 일화도 있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대형 포털 사이트들의 지식, 백과사전 등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으니 궁금하면 검색해 보길...

수정전[2011년 12월 8일 국가지정 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됨.]

궐내각사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건물이다. 경회루 남쪽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는 수정전은 
세종때 집현전으로 사용되었고 임진왜란때 소실된 것을 1867(고종4)에 재건하였다. 
이후 일제에 의해 궐내각사의 모든 행각과 건물이 헐리고 이 수정전만 남았다. 
1894~1896년까지 조선의 개혁을 주도하였던 갑오경장 때에는 군국기무처로 사용되었다.

*궐내각사(闕內各司) : 궁궐 외부에 자리하고 있던 육조외에 왕을 근저에서 보필할 필요가 있던 관원들의 관사인 
빈청,승정원,대청 등 궁궐내부에 자리하고 있던 관청들을 말함.[뜻 그대로 궐 내에 있는 관청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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