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은 수강궁터에 성종이 1483년에 지었다. 조선시대의 궁궐 중에서는 유일하게 동쪽을 향해 지은 건물이다. 처음에는 별로 사용되지 않다가, 임진왜란 때에 불에 탄 이후 창덕궁과 같이 다시 지어져 조선왕조 역사의 중심 무대가 되었다. 창경궁은 순종이 즉위한 후부터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09년 궁궐 안의 건물들을 헐어내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였으며, 궁의 이름을 창경원으로 낮추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1984년 궁궐 복원사업이 시작되어 원래 이름인 창경궁을 되찾게 되었고, 궐 안의 동물들을 서울대공원으로 옮기면서 벚나무 역시 없애버렸다. 장조, 정조, 순조, 헌종을 비롯한 많은 왕들이 태어난 궁으로, 광해군 때 다시 지어진 정문, 정전들이 보존되어 있다.

홍화문[보물 제384호]

창경궁의 정문으로 조선 성종 15년(1484)에 지은 건물이다. 임진왜란(1592) 때 불에 타, 광해군 8년(1616)에 다시 지었고 지금 있는 건물은 그 뒤로도 여러 차례 수리하였다. 

명정전

창경궁의 정전으로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 큰 행사를 치루던 장소로 사용하였으며,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장소로도 이용하였다. 조선 성종 15년(1484)에 지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광해군 8년(1616)에 다시 지었다.
앙구일부(해시계) 보물 제845호
1434년(세종 16) 장영실이 처음 만든 앙부일구는 종로 혜정교(惠政橋)와 종묘 남가(南街)에 각각 쌓은 석대 위에 설치하여 한국 최초의 공중시계 역할을 하다가 임진왜란 때 유실되었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관리하고 있는 2개의 앙부일구는 그로부터 2∼3세기 후에 만든 것으로 전의 것과 제작 기법이 같다. 현재 복원된 모습은 원래의 모습과 다름을 알 수 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이전 1 2 3 4 5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