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의 대표적인 이궁이다. 1616년에 세워진 경희궁은 원래 경덕궁이었으나 영조 때 이름이 바뀌었다. 원래의 규모는 약 7만여 평이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인 1907년부터 1910년에 걸쳐 강제로 철거되어 궁궐로서의 존재 가치를 상실하였다. 궁터도 철저하게 파괴되고 변형되어 결국 현재의 규모로 축소되었다. 경희궁에는 부속 건물들이 대부분 없어졌다. 일부 남아 있는 건물 가운데 회상전은 조계사로 흥정당은 광운사로 숭정전은 동국대학교로 흥화문은 박문사 황학정은 사직공원 뒤로 각각 옮겨졌다. 현재 이 자리에 궁궐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유물로는 정전이었던 숭정전의 기단부와 제자리에서 옮겨진 석수, 댓돌 등이 있고 이 밖에 바위에 새겨진 글이 남아있다.

흥화문

경희궁의 정문으로 다른 궁궐의 정문이 2층으로 지어진 것과 달리 흥화문은 1층으로 지어졌는데 그것은 경희궁이 이궁(離宮)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경희궁을 말살하는 과정에서 1915년 남쪽 담장으로 옮겨졌다가 1932년 박문사(博文寺)의 절문으로 이용되었다. 그 뒤 신라호텔의 정문으로 사용되기까지의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변형되거나 파손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숭정전

1617~1620년 사이에 경희궁을 창건할 때 지어진 건물이다. 원래 경희궁의 정전(正殿)이었는데 민족항일기인 1926년 현 위치(동국대학교 내)로 옮겨져 현재 정각원(正覺院)이라는 법당으로 쓰이고 있다.
일본인들이 강제로 철거하여 팔아 넘긴 탓으로 원형이 크게 파손되었고, 교실·체육관 등으로 사용되면서 많이 변형되었다. 현재는 불교식 의례를 행하기에 알맞도록 내부가 변경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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