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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문, 근정전

Posted by newdoll 궁[宮]/경복궁 : 2012. 1. 1. 21:12

근정문

근정문은 경복궁의 중심 건물인 근정전의 남문으로 좌우에 복도 건물인 행각이 둘러싸고 있다. 조선 태조 4년(1395) 경복궁을 세울 때 함께 지었으나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은 고종 4년(1867) 경복궁을 다시 세우면서 같이 지은 것이다. 

근정문 양쪽으로 일화문(日華門)과 월화문(月華門)이 있고 근정전 북쪽으로 사정문(思政門)이 있다. 지금 남아 있는 조선시대 왕궁 정전의 남문 중 하나 밖에 없는 2층 건물이다.
근정문 너머로 근정전이 보인다. 신하들은 근정문 양 옆의 월화문, 일화문으로 다녔고 근정문은 왕이 출입하던 문이다.
근정문에서 바라본 근정전. 가운데로 어도(임금님이 다니는 길)가 나있고 양옆으로 신하들이 다니던 길이 있다. 그 길 양 옆으로 품괴석이 세워져 있고 근정전 영역은 궁에서 유일하게 전체가 박석으로 깔려있다. 

근정전

1985년 1월 8일 국보 제223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초기부터 역대 국왕의 즉위식이나 대례 등을 거행하던 곳으로, 1395년(태조 4)에 지은 것은 임진왜란 때 불타고, 현재의 것은 조선 말기인 1867년(고종 4) 11월에 흥선대원군이 중건한 것이다. 다포양식(多包樣式)의 건물로, 현존하는 국내 최대의 목조건물이다.
품괴석은 근정전에서 바라볼때 앞쪽부터 정1품부터 종9품까지 총18개가 
세워져 있다. 잘 알고 있는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정 1품에 해당한다. 국가 행사등이 있을 때 신하들은 자신들의 벼슬에 맞게 품괴석에 정렬했다고 한다.
근정전 내부의 모습. 용상 뒤로 일월오봉도가 보인다. 일월오봉도는 임금이 있는 곳에 항상 따라다녔다고 한다. 그래서 1만원군 지폐에도 세종대왕이 계시기에 일월오봉도가 세겨져 있다고...

그 앞으로 방석이 놓여져 있는데 사관들이 앉아서 왕의 행동과 말을 기록했다. 사관은 태조때 등장하여 조선왕조 472년간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했는데, 당대의 왕이 죽으면 다음 왕 즉위 초기에 전 왕의 기록을 책으로 펴냈다. 이 책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조선왕조실록이다. 전세계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기록 유산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사관이 기록한 내용은 어느 누구도 열람할 수 없었으며, 왕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후대에 기록될 자신의 모습때문에 왕들도 사관 앞에서는 행실을 조심했다고 한다.
근정전 천장에 새겨진 용문양. 용의 발톱이 7개인데, 왜 7개인지 문헌에 나와있지 않아 추측만 있다고 한다. 그중에 하나가 음양오행인데, 요런건 정보가 없어 아쉽다.
근정전 주위로 깔려있는 돌을 박석이라 부른다. 요즘 우리가 볼때는
충분히 판판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울퉁불퉁한게 대충 만든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여기에도 조상의 지혜가 있었으니 화강암의 특성상 판판하게 가공하면 빛의 반사가 많기때문에 눈부심을 없애기 위해 일부로 이렇게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가죽 신을 신고 다녔기에 비나 눈이 왔을 때 미끄러지지 않게 하기 위한 이유도 있다.

그리고 느끼기 힘들지만 남쪽으로 경사가 심하게 져서 비가 많이 와도 배수가 잘 되게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비가 많이 올때 남쪽 양 귀퉁이로 물이 몰리는걸 볼 수 있단다. 하지만 이렇게 경사가 심해도 못느끼는 이유가 있으니 근정전 동서쪽에 있는 행각때문이다. 자세히 보면 행각이 3단으로 층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낮아지는 남쪽으로 행각도 단계적으로 낮추었는데, 이때문에 착시현상으로 경사짐을 잘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알면 알수록 조상들의 지혜에 감탄하게 된다.

근정전은 2단의 월대위에 지어졌는데, 월대는 다른 궁궐의 정전에도 모두 있지만 경복궁의 월대에만 난간이 있다. 1층 난간에는 12지신상이 새겨져 있고 2층 난간에는 동서남북으로 용, 호랑이, 주작, 현무가 새겨져 있다.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
1층 난간에 새겨져 있는 12지신상. 하지만 개와 돼지는 새겨져 있지 않다는데, 그 이유는 문헌에 나와있지 않아서 모른단다. 어느 자료에서는 집에서 흔하게 키우던 개와 돼지는 빠졌다고 되어 있는데, 소랑 닭을 생각했을 때 그건 아닌것 같다.
2층 난간에 새겨져 있는 용, 호랑이. 호랑이가 익살스러운게 여기서도 조상들의 해학미를 다시 한번 볼 수 있다. 근정전에 앉아 있는 임금은 남쪽을 바라보기 때문에 임금님 기준으로 좌측, 즉 동쪽에 용이 서쪽에 호랑이가 새겨져 있다.
근정전의 월대 위에 서면 남쪽으로 근정문, 흥례문, 광화문이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고층 빌딩들을 보니 아름다운 우리 문화재가 답답하게 갇혀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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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 경복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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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궁궐 중 가장 중심이 되는 곳으로 1394년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 후 세웠다. 궁의 이름은 정도전이 시경에 나오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 만년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에서 큰 복을 빈다는 뜻의 경복이라는 두 글자를 따서 지은 것이다. 정종이 즉위하면서 도읍을 다시 개성으로 옮기어 궁을 비우게 되었으나, 제 3대 태종 때 또 다시 환도하여 정궁으로 이용되었다. 1412년 태종은 경복궁의 연못을 크게 넓히고 섬 위에 경회루를 만들었다. 이 곳에서 임금과 신하가 모여 잔치를 하거나 외국에서 오는 사신을 대접하도록 하였으며, 연못을 만들면서 파낸 흙으로는 아미산이라는 동산을 만들었다.

 
태종의 뒤를 이은 세종은 주로 경복궁에서 지냈다. 경회루의 남쪽에는 시각을 알려주는 보루각을 세웠으며, 궁의 서북 모퉁이에는 천문 관측 시설인 간의대를 마련해 두었다. 또한 흠정각을 짓고 그 안에 시각과 사계절을 나타내는 옥루기를 설치하였다.

 
경복궁은 중국에서 고대부터 지켜져 오던 도성 건물배치의 기본형식을 지킨 궁궐이다. 궁의 왼쪽에는 역대 왕들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종묘가 있으며, 오른쪽에는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이 자리 잡고 있다. 건물들의 배치는 국가의 큰 행사를 치르거나 왕이 신하들의 조례를 받는 근정전과 왕이 일반 집무를 보는 사정전을 비롯한 정전과 편전 등이 앞부분에 있으며, 뒷부분에는 왕과 왕비의 거처인 침전과 휴식공간인 후원이 자리 잡고 있다. 전조후침의 격식인데, 이러한 형식은 이 궁이 조선의 중심 궁궐이므로 특히 엄격한 규범을 나타내고자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1867년에 흥선대원군이 다시 세웠다. 그러나 1895년 궁궐 안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왕이 러시아 공관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주인을 잃은 빈 궁궐이 되었다. 1910년 국권을 잃게 되자 일본인들은 건물을 헐고, 근정전 앞에 총독부청사를 짓는 등의 행동을 하여 궁의 옛 모습을 거의 잃게 되었다. 비록 그렇다 할지라도, 정정, 누각 등의 주요 건물들이 남아 있고 처음 지어진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조선 정궁의 대체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광화문

1395년(태조 4) 경복궁을 창건할 때 정전(正殿)인 근정전과 편전(便殿)인 사정전·침전인 경성전(慶成殿)·연생전(延生殿)·강녕전(康寧殿) 등을 지어 궁궐의 기본구조를 갖춘 다음, 1399년에 그 둘레에 궁성을 쌓은 뒤 동·서·남쪽에 성문을 세우고, 동문을 건춘문(建春門), 서문을 영추문(迎秋門), 남문을 광화문이라 이름 지었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 당시인 1865년(고종 2)에 다시 짓게 하였다. 1927년에는 일제의 문화말살정책으로 인해 경복궁의 여러 곳이 헐리고 총독부청사가 들어서면서 건춘문 북쪽으로 옮겨졌다.

이후 광화문은 6·25사변 때 폭격을 맞아 편전인 만춘전(萬春殿)과 함께 불타버렸다. 1968년에 석축 일부가 수리되고 문루는 철근콘크리트구조로 중건되었다가 2006년 들어, 경복궁 복원공사의 일환으로, 철거되어 고종연간의 중건 모습을 기준으로 하여 복원되었다.

건춘문 북쪽으로 옮겨진 광화문의 모습. 앞으로 중학천이 흐르고 있고 중학천에서 빨래하는 여인네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동십자각에서 바라본 광화문의 모습. 건춘문 북쪽으로 이건된 광화문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다. 현재 중학천은 없어지고 도로로 복개되었고 동십자각은 궁궐 담장이 헐리면서 섬처럼 떨어졌다.

영추문

경복궁의 서문.  경복궁 서측으로 전차가 다녔는데, 전차의 진동으로 인해 왼편 담장이 붕괴됐다. 붕괴된 이후 복원되지 않고 1926년 일본인들에 의해 헐렸고 현재의 자리에 1975년 원형대로 복원하였다.

경회루에서 바라본 경복궁

근정전[국보 제223호]

신하들의 조하(朝賀)를 받거나 정령(政令)을 반포하는 정전(正殿)으로, 때로는 사신을 맞아들이기도 하고 양로연(養老宴)이나 위로연을 베풀기도 하던 곳이다.

현재의 건물은 1867년 중건된 것으로, 경복궁 창건 당시인 1395년(태조 4)에 지은 건물이 임진왜란 때 불타 버린 뒤 270여년 만에 다시 지은 건물이다. 중건 당시 태조 때의 건물을 원래대로 복구하지 않고 회랑(廻廊)을 단랑(單廊)에서 복랑(複廊)으로 바꾸고 월대(月臺 : 궁전 앞에 있는 섬돌)도 새로 만드는 등 변화가 있었다.

근정전에서 바로본 근정문과 총독부 건물.

근정문 넘어로 지금은 헐린 총독부 건물이 우리 역사의 씁쓸함을 보여준다.

사정전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각지붕 다포집. 1867년(고종 4) 건립. 왕이 일반 업무를 보던 집무실

경복궁 자경전 십장생 굴뚝[보물 제810호]

집옥재팔우정
경복궁 건청궁 안에 있는 전각. 원래는 팔우정·협길당과 함께 창덕궁 함녕전의 별당으로 지어졌으나, 1888년 고종이 거처를 창덕궁에서 경복궁으로 옮기면서 함께 이전되었다. 경복궁 내의 다른 전각들과는 달리 당시로서는 신식인 중국풍의 서양식으로 지은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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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2.24 1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2017.02.24 18:42 김가람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죄송하지만 댓글을 확인할 수가 없네요ㅠㅠ
    다시 한 번 복사해서 답글을 달아주실 수 있을까요?

    • newdoll 2017.02.25 06: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동네의 사생활 방송의 좋은 취지를 알기에 사용하신다면 저로서도 영광입니다 ^^ 다만 사진을 제가 촬영하긴 했으나 저도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리건판 궁궐 사진전에서 찍은 것이기에 유리건판에 대한 저작권 여부까지는 모르겠습니다 ^^; 혹시라도 모르니 이점은 확인을 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3. 2017.02.27 12:04 김가람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 친절한 답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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