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벡은 캐나다에서 가장 유럽풍의 느낌이 나는 도시가 아닐까 싶다. 특히 올드퀘벡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어 17세기의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유럽을 다녀온 사람들은 실망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유럽에 와 있는 착각이 들정도의 느낌을 받는다.

퀘벡이란 도시는 세인트로렌스강 어귀에 내만이 갑자기 좁아진 지점에 발달한 항구도시이다. 지명은 인디언어로 해협 또는 갑자기 좁아진 지점을 뜻한 것에서 유래되며, 인디언 시대에는 스태더코나라고 불렀다. 이곳 퀘백에서 하류로 20km만 가도 강폭이 5km이상 넓어진다. 이렇게 넓은 강이 퀘벡에서 1km로 좁아지니 '갑자기 좁아지는 지점'의 이름 유래가 쉽게 납득이 간다.

이곳을 최초로 찾아든 백인은 1535년 프랑스인 자크 카르티에였으나, 1608년 샹플랭이 처음으로 정착에 성공했다. 그 후 이곳은 프랑스와 영국 간에 여러 번 쟁탈이 계속되었다가 1736년의 파리조약 이래 정식으로 영국령(領)이 되었고, 1841∼67년까지 캐나다 식민지의 주도가 되었다.

올드퀘벡시티는 아직도 성이 남아 있으며 프랑스군과 영국군의 전쟁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수직으로 솟은 성벽은 보기만 해도 난공불락의 요새였을것 같지만 프랑스군은 패하고 말았다.
성안에는 전쟁당시 전사한 사람들을 묻은 공동묘지와 그 위의 커다란 십자가, 그리고 나무에 박힌 포탄이 그때의 생생한 모습을 대변해 주는 것 같다.
성안은 들어서면 유럽의 거리를 걷는 느낌이다. 사실 유럽은 가보지 못해 얼마만큰 비슷한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영상매체를 통해 접한 것들과 비교하면 정말 유럽을 옮겨다 놓은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도 그럴것이 17세기 프랑스인들이 이주해 만든 도시니 당연하지 싶다.
성안에는 많은수의 동상이 있는데(총 몇개라고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 동상들을 다 둘러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아닐까 싶다.
성 위에서 바라본 항구가 아주 아름답다. 예전 프랑스 개척자들이 배를 타고 이곳에 내려 이 언덕에 도시를 형성했을거라 생각하니 그때로 돌아가 그들과 함께 역사의 발자국을 따라 여행을 하는 느낌이다. 

항구로 내려가는 길 우측으로 가파른 계단이 보인다. 가이드 말로는 목이부러지는 계단이란다. 경사가 너무 가파르다 보니 넘어지면 목이부러진다해서 그렇단다. 듣기만 해도 끔찍하다. 내가 갔을때는 공사중이어서 가보지는 못했다.
올드퀘벡은 어딜봐도 예쁘다. 하늘을 봐도 건물 지붕들의 라인이 예술이다. 그 시대의 예술성은 어찌보면 지금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느낌이 든다.

성 아래에는 건물 한쪽면 전체가 벽화인 건물이 있다. 
퀘벡 시티의 거리에서 프레스코화를 종종 볼 수 있는데, 겨울이 너무 추워 북쪽으로는 창을 내지 않았고, 그렇게 텅 빈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벽화의 기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프레스코화는 올드퀘벡의[La fresque des quebecois] 즉 ‘퀘벡의 프레스코화’다. 실물크기의 이 벽화는 열 여섯 명의, 퀘벡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이 그려져 있음과 동시에 현재의 생활 모습이 섞여 있다. 1990년에 완성된 이 벽화는 12명의 아티스트가 2,550시간 동안 작업한 결과물이다. 

샤토 프롱트낙 호텔 [Chateau Frontenac Hotel]

미국인 부루스 프라이가 설계한 이 호텔은 1893년에 착공되어 1983년에 완공될 때가지 1세기동안 계속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샤토 스타일로 지어진 이 건물은 객실이 600개에 달하는, 건물 자체만으로도 웅장한 위용을 자랑한다. 이 호텔은  이름은 1673년 뉴프랑스의 초대 총독으로 부임한 콩트 드 프롱트낙(Comte de Frontenac)에서 유래한다. 이 호텔은 프랑스식 성을 참조하여 지었는데, 한때는 군 지휘부 및 병원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역사가 깊은 이곳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중요한 회의가 있었던 장소이기도 하다. 1943년과 1944년에 미국대통령 루스벨트와 영국수상 처칠은 이곳을 방문한다. 이 둘은 이곳에서 제 2차 세계대전의 전략을 의논하는데, 이곳에서 결정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다.
올드퀘벡의 노트르담 성당. 몬트리올의 노트르담 성당이 화려한 색채들의 집합체였다면 이곳은 단순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 같다. 들어서자마자 온통 금빛인 이곳은 눈이 부시다는 표현을 이럴때 쓰는 것이구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날은 방송사에서 촬영을 하는듯 하여 아쉽지만 둘러보지는 못하고 발걸음을 돌려야했다.
이곳건물들의 지붕은 어떻게하면 이렇게 아름다울수 있을까 싶다. 청동과 은빛의 지붕들이 아주 매혹적이다.
성 안은 오래된 역사의 도시임에도 자유분방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과거와 현재의 공존 모습을 보는듯 하다. 어찌보면 역사 유적지에서 저런 몰상식한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한데, 저것도 역사의 한부분이니 이곳 사람들은 공존보다는 연장선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유홍준교수님이 무릎팍도사에 나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보존된 마루가 진주성 촉석루로 먼지 앉고 공기 통하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문화재라도 변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뭐 자전거 타는거랑 비교하긴 좀 그렇지만 옛날이었으도 아이들은 저 위에서 뛰어 놀았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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