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화문

광화문 [光化門] 1395년(태조 4) 경복궁을 창건할 때 정전(正殿)인 근정전과 편전(便殿)인 사정전·침전인 경성전(慶成殿)·연생전(延生殿)·강녕전(康寧殿) 등을 지어 궁궐의 기본구조를 갖춘 다음, 1399년에 그 둘레에 궁성을 쌓은 뒤 동·서·남쪽에 성문을 세우고, 동문을 건춘문(建春門), 서문을 영추문(迎秋門), 남문을 광화문이라 이름 지었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 당시인 1865년(고종 2)에 다시 짓게 하였다. 1927년에는 일제의 문화말살정책으로 인해 경복궁의 여러 곳이 헐리고 총독부청사가 들어서면서 건춘문 북쪽으로 옮겨졌다. 이후 광화문은 6·25사변 때 폭격을 맞아 편전인 만춘전(萬春殿)과 함께 불타버렸다. 1968년에 석축 일부가 수리되고 문루는 철근콘크리트구조로 중건되었다가.. 더보기
유리건판 궁궐 사진전 [경복궁] 조선시대 궁궐 중 가장 중심이 되는 곳으로 1394년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 후 세웠다. 궁의 이름은 정도전이 시경에 나오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 만년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에서 큰 복을 빈다는 뜻의 경복이라는 두 글자를 따서 지은 것이다. 정종이 즉위하면서 도읍을 다시 개성으로 옮기어 궁을 비우게 되었으나, 제 3대 태종 때 또 다시 환도하여 정궁으로 이용되었다. 1412년 태종은 경복궁의 연못을 크게 넓히고 섬 위에 경회루를 만들었다. 이 곳에서 임금과 신하가 모여 잔치를 하거나 외국에서 오는 사신을 대접하도록 하였으며, 연못을 만들면서 파낸 흙으로는 아미산이라는 동산을 만들었다. 태종의 뒤를 이은 세종은 주로 경복궁에서 지냈다. 경회루의 남쪽에는 시각을 알려주는 보루각을 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