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궁[宮]/경복궁

흥례문, 영제교, 유화문

흥례문

1395년(조선 태조 4)에 '예(禮)를 널리 편다'는 뜻의 홍례문(弘禮門)으로 지었으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소실(燒失)되었다. 이후 1867년(고종 4) 흥선대원군이 중건하면서 청(淸) 건륭제(乾隆帝)의 이름인 홍력(弘歷)에서 홍(弘)자를 피하기 위해 흥례문으로 고쳤다고 한다.


일제시대때 일제에 의해 파괴되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 건물이 들어섰는데, 1996년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영제교, 금천과 함께 복원하였다.
광화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흥례문이 보이고 그 앞으로 임금님이 다녔던 어도가 보인다. 어도와 흥례문은 복원된 것.

흥례문에서 표를 내고 안으로 들어서면 정면으로 근정문이 보이고 흥례문과 근정문 사이로 영제교와 금천를 볼 수 있다.

영제교(금천교)

궁궐 안에 있는 어구(御溝)를 금천(禁川)이라고 하고 그 위에 놓인 다리를 일반적으로 금천교(禁川橋)라고도 불렀는데, 경복궁의 금천교를 영제교(永濟橋), 창덕궁의 금천교를 금천교(錦川橋), 창경궁의 금천교를 옥천교(玉川橋)라고 하여 별도의 이름을 붙여 불렀다고 한다. 태조 4년(1395) 경복궁을 건설할 때 만들어진 다리이며, 세종 8년(1426) 영제교라고 이름지었다. 1916년 일제가 조선총독부를 건립하면서 해체되었고, 해체된 석재 일부가 수정전(修政殿) 앞에 방치되어 있다 1965년 근정전 동행각과 건춘문 사이로 옮겨 복원하였다. 이후 흥례문 일곽을 중건하면서 원래 자리에 이전 복원하였다.

금천

금천은 상징적 의미가 컸다고 한다. 금천으로 백성과 왕의 영역이 구분되어지고, 궁에 입궐하는 사람들은 이 금천을 지나면서 모든 악한것을 물에 씻어 보낸다는 의미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건 아시아 국가에서는 다 비슷한것 같다. 예전 캄보디아를 갔을 때 앙코르와트 유적을 방문했었는데, 거기도 유적 주위로 해자를 파고 다리를 놓았는데 같은 의미가 있었다. 아무래도 문화가 서로 영향을 받으니 비슷한 듯 하다.

금천은 이 외에도 궁의 배수로 역할을 했으며 목조건물로 이루어진 궁에서 위급시 소방수 역할도 했다고 한다. 원래 북악산에서 흘러들어온 물과, 향원정, 경회루에서 배수된 물이 이 금천을 따라 동쪽으로 나가 삼청동천(중학천)을 따라 청계천으로 흘러 한강으로 가게 되어 있었다. 일제에 의해 해체되는 아픔을 겪고 다시 복원되었지만 그때처럼 배수의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

천록은 해치와 마찬가지로 잡귀를 쫓는 역할을 했는데, 물을 타고 들어오는 나쁜 잡귀를 쫓는 의미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잡귀를 쫓는 얼굴이 별로 무섭지가 않다. 혀를 내밀고 있는 천록도 있는데, 여기서 우리 조상들의 해학미를 볼 수 있다. 다리 좌우 남북으로 각각 하나씩 총 4마리가 있는데, 약간씩 모습이 다르니 하나씩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는 관람이 될 듯 하다.

유화문

홍례문을 들어서 금천 너머 좌측을 보면 
유화문(維和門)이 보인다. 이 문은 경복궁 서쪽에 위치했던 궐내각사(闕內各司)의 관원(신하)들이 경복궁을 출입할 때 이용했던 문이다. 유화문도 흥례문, 영제교가 복원될 때 함께 복원되었다.

'궁[宮] > 경복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왕비의 침전 교태전.  (1) 2012.01.09
왕의 침전 강녕전.  (0) 2012.01.06
왕의 주 업무 공간 사정전  (0) 2012.01.03
근정문, 근정전  (0) 2012.01.01
광화문 [光化門]  (2) 2011.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