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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이야기

서대문 독립공원

독립문을 보고 싶어 서대문 독립공원을 찾았다. 오후에 서울에서 약속이 있었는데 오전에 독립문을 시작으로 인왕산에 올라 경복궁과 민속박물관을 드린 후 남대문 카메라 메장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일단 계획했던대로 다 실행에 옮겼다. 시간에 쫓겨 점심도 굶고 급하게 다니느라 다리가 혹사를 당했으니 아마 성질이 좀 났을 듯 싶다.
지하철3호선 독립문역에 내려 4번 출구로 나가면 서대문 독립공원을 만날 수 있다. 인왕산에 올라 경복궁까지 가야하니 서대문 형무소는 다음에 들러보기로 하고 독립문으로 향했다.
저 멀리 독립문이 보이는데 고가차도가 완전 거슬린다. 미관상 안좋아 서울 곳곳의 고가차도가 철거 되었는데 여기는 아직 계획이 없나보다. 아무튼 그래서 북쪽에서 바라본 미관은 좋지 않다.

독립문(獨立門)

독립문은 갑오개혁(1894~1896) 이후 자주독립의 결의를 다지기 위해 1897년 11월 20일에 완공한 기념 석조물이다.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서는 어떠한 간섭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우게 되었다.
프랑스의 파리 개선문을 본떠 만들어 그 모습이 특이하다. 윗부분만 보면 궁궐이나 하천에서 볼 수 있는 우리나라 돌다리 같은 느낌인데 양옆을 보면 그리스 신전에서나 보았을 기둥 양식을 볼 수 있다. 내부 왼쪽에는 옥상으로 통하는 문이 있는데 문은 우리나라 전통양식이다.
독립문 앞쪽으로 보이는 두 기둥이 영은문 주초인데 영은문의 나무 기둥을 받쳤던 초석이다. 명나라 사신을 영접하기 위해 1407년에 모화루를 짓고 1430년에 모화관으로 이름을 바꾸고 홍살문을 세웠다. 이후 격이 낮은 홍살문을 없애고 1536년에 청기와를 덮은 영조문을 만들었다. 이후 3년 뒤 이름을 영은문이라고 고쳤다.

독립협회를 설립한 서재필은 사대외교의 상징인 영은문을 철거하고 독립문을 지을 것을 주장하였고 그의 의견에 따라 1896년에 모화관을 수리하여 독립관으로 하고, 영은문을 없앤 터에 독립문을 세웠다.

독립문 앞쪽에 잇던 초석은 1934년 약간 남쪽으로 옮겼다가 1979년 성산대로를 만들면서 독립문과 함께 지금 위치에 옮겨졌다.

조선시대 영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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